너희를 키우면서 나는 고즈넉한 야밤을 좋아하게 되었어. 매운 비빔면같은 야식으로 스트레스를 날린 후 홀로 책을 읽거나 인터넷 샤핑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곤 했던 지난 날의 밤이 너무 좋았다.

지금도 여전히 하루의 일과를 끝낸 그 밤이지만, 눈은 티비 트롯 프로를 힐끗, 귀는 코를 골며 주무시는 나의 엄마에게 쫑긋대고, 숙면에 도움을 주리라 믿고 있는 유자차 한 잔의 내음이 방금 양치한 치약의 맛과 어울러 내 코를 간지럽히네.

멀티플레이 시대에 나도 동참하느라 오감이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굳어진 내 머리는 고요한 한밤으로 인해 하나로 맑아오는 느낌이야. 변덕스러운 봄날씨로 인해 항상 아프던 곳이 도져서 기분은 엉망이지만, 나를 감싸고 있는 이불 덕분에 몸은 포근하다.

자기 전에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잘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하루의 마무리는 했으니까... 그냥 이대로 편한 기분 그대로 우주의 한 점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

계속 쓰다가는 광활한 우주의 신비를 논하며 내 사는 동안 과연 우주여행 해볼 수 있을까로 비약할 것 같아. 이만 마쳐야겠어.

가장 먼저 수련실에 도착해 눈을 감고 앉아있으면,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와 나의 호흡소리, 땅바닥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내 엉덩이와 그에 맞닿은 단단한 지면이 서로 연결된 듯 조화롭게 느껴져.

가만히 몸의 감각을 느껴보니 얼마 전 다친 오른쪽 햄스트링에서 찌릿한 느낌이 올라오지만, 이 느낌도 마냥 싫지만은 않아. 이렇게 내 몸을 한 층 더 알았으니까, 차라리 지금 아파서 앞으로 조심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위로하고 있어.

빗소리를 들으면서 요가할 생각을 하니 정말 설레. 난 빗소리를 들으면서 요가하는 걸 좋아하거든.

한때 양자역학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내가 가장 매료됐던 개념은 이런 거였어.

'사물은 존재하는 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대로 존재한다.' 라는 것.

유체든 고체든 사실 파헤쳐보면 결국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우리의 의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할 수 있어. 우리의 몸 또한 마찬가지야. 손을 잡고 포옹하는 행위는 단순히 살갗이 만나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주고 받는 행위인 거지. 누가 나를 쳐다보면 왠지 뒤통수가 따갑고, 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면 내 마음도 함께 따뜻해지는 게 그래서가 아닐까? 우리가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도 따뜻하게 변하게 될거야.

비가 그친 요가원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야.

텅 빈 수련실에 홀로 앉아서 눈을 감고 있으면 내 마음의 소리가 가장 소란스럽게 느껴져. 비온 뒤 바닷가에 성난 듯 몰아치는 파도처럼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오고가는 것 같아.

'파도를 멈출 수는 없지만, 파도 타는 법은 배울 수 있다' 고 한 존 카밧진 스님의 말처럼, 오늘도 통증과 조급함과 좌절감 사이에서 열심히 파도타는 법을 배우고 있어.

언제쯤 인생의 파도를 즐길 수 있을까?

✉️ 23. 3. 7. 오전 1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