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만 치면 각종 요리 레시피가 뜨는 요즘, 결혼식 후에도 요리라고는 계란 후라이 (라면도 그다지 맛나게 끓이지 못했어)가 전부였던 내가, 아이 둘을 키우면서 요리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지. 그 당시 유일하게 가입했던 카페가 "82cook"였었으니까. 따라한 요리는 별로 없었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도 유난히 입 짧은 네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이리저리 찾아보고 연구하다 알아낸 너의 입맛은 "영감식성"였단다. 

주변에서 너를 일컫던 말이 있었어. 생긴 것은 천상 요조숙녀인데 남자아이들하고 축구(그래봤자 골키퍼)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외국인처럼 생겼는데 먹는 음식은 저렴한 토종 한국인이라고. 사과, 복숭아, 귤, 모든 과일은 후숙하다 못해 삭아서 부드러워져서야 네 입으로 들어갔고, 모든 채소국들은 파릇한 초록색 이파리에서 우중충한 초록색으로 변신이 된 후에야 네 입에서 "맛있어!"라는 감탄사가 울려퍼졌지. 해물을 좋아하는 네 오빠는 돈낭비 고급입맛이고, 너는 푹 끓여야 하는 가스낭비 입맛이었어.

레시피는 그냥 푸욱 끓이기만 하면 돼. 싱싱하고 어린 우거지를 사다가 살짝 데쳐놓고, 돼지 앞다리살이나 목살은 덩어리째로 냄비에 된장 풀고, 마늘 넣고 푹 삶으면 되는데, 중간중간 뜨는 거품이나 기름기도 제거해야 해. 어느 정도 시간 지나서 고기가 익으면 우거지 넣고 고춧가루 약간, 고추도 있으면 넣고 또 푸욱~~ 우거지가 힘을 잃고 너덜해져야 네 숟가락이 움직이기 때문에 드라마 한 편 끝날 떄까지, 물도 홍수날만큼 넣어야 해.

그렇게 먹는 날은 대개 내가 김치를 담그거나 겉저리를 만드는 날인데, 남들은 김치 담그는 날이 라면데이라는데 나는 왜 번거롭고 일만 많은 우거지데이일까?

이 질문을 엄마한테 건넸을 때, 마치 텔레파시가 통한 듯 엄마는 "우거지!"라고 외쳤지.

우거지수육에 대해 쓸거라 예상은 했지만서도, 엄마가 좋아하는 요리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시그니쳐로 꼽은 건 왠지 고맙기도 뭉클하기도 해.

왜 나이를 먹으면 입맛도 달라지잖아. 나 어릴 적에 그렇게 싫어하던 굴을 작년부터 먹기 시작했어. 생굴은 아직 조금 어렵지만, 찐 굴은 없어서 못먹어. 이제는 조미료로 범벅된 한식보다, 신선한 재료를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샐러드나 해물이 더 좋아. 그래서 엄마의 우거지국도 오랜만에 먹었는데 입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막상 엄마가 끓여주니까 냄새만으로도 밥 세공기는 거뜬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거 있지?

내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 이사님께 추천받은 팟캐스트가 있는데, "일당백(일생동안 당신이 읽어야 할 백 권의 책)"이라는 방송이야. 논어, 성경같은 어려운 책들을 분석하고 설명해줘서 재밌고, 지루해질라치면 엉뚱한 PPL과 유머로 다시 몰입하게 만들어. 아무튼 거기서 서유기에 대해 얘기하는 걸 얼마 전에 들었는데, 거기서 하는 말이 서유기든 일리아드든 성경이든, 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책들은 전부 유사한 구성을 보인대.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 태어난 곳을 떠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깨우친 뒤에 결국은 처음 떠나왔던 곳으로, 혹은 다른 곳에 다시 정착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는거야.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결국 어릴 때부터 먹던 엄마의 우거지국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아. 부모의 품을 떠나 이 세상을 탐험하고, 결국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거나 자기만의 가정을 만들어 정착하잖아.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결국 인생의 첫 시작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였으니까, 그 안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나도 어릴 때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일리아드의 오디세우스처럼, 성경의 예수처럼, 서유기의 손오공처럼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지금은 온 세상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몇 사람만이라도 나로 인해 삶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야. 이 마음가짐으로 매 순간 결정을 내리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 있어. 이 여정이 언제 끝날지, 어디서 끝날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언젠가 내가 돌아올 곳은 집이라는 거야.

호기심이 너무 많은 날 용서해줘. 나만의 보금자리와 나만의 직업, 나만의 인생을 찾기 위해 조금만 더 이 세상을 탐험해보고 다시 돌아올게. 푸욱 끓여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엄마의 손맛을 찾아서 말야.

이건 내가 제일 자신있는 돼지고기 가지볶음 🍆

사실 백종원 레시피긴 해 ^^;

그래도 그냥 반찬으로 먹어도 맛있고, 전분물을 풀어서 덮밥으로 해먹어도 맛있더라고.

가장 중요한 건 가지를 양념에 볶기 전에 먼저 흐물흐물할 때까지 볶아두는 거!

가지 맛있게 먹고 싶은 사람들한테는 완전 강추하는 요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