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세월이 더디 가는 것만 같고, 성인이 되어서는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간다지.

굵은 가지에 커다란 잎사귀를 달고, 산 정상에 서서 내 곁에 오는 누구든지 감싸줄 수 있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

생명을 다하는 꽃이나 움직이는 동물 말고 사시사철 푸르른, 누군가에게 꺾이지만 않는다면 언제나 그 곳에 남아있을 수 있는 나무.

그렇게 계속 서서 기다리다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면 무척 반갑겠지.

산토끼나 다람쥐 등 산짐승들이 항상 놀러올 테고, 기나긴 겨울에는 내가 만든 나무 동굴에서 따뜻하게 잠자며 친구해줄테니 외롭지는 않겠지.

음.. 쓰다보니 내용이 산으로 가는구나.

저녁식사 후 산책 나온 공원에서 아이들 수다 속에 글을 쓰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벚꽃길을 걷노라니 순간 벚나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네.

꽃잎이 떨어지는 커다란 벚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편지 쓰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엄마의 건강과 내 행복을, 엄마의 꿈과 내 경험을 맞바꿨으니까.

그런 삶에 지쳐 다시 태어나면 부잣집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다고도 할 만 한데,

또 다시 커다란 나무가 되어 엄마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고 싶구나.

도대체 어디서 그런 사랑과 에너지가 나오는 걸까?

들꽃 하나만 뽑을라 쳐도 옆에 있는 풀들까지 같이 뿌리째 뽑히잖아.

그만큼 아무리 강해보이는 존재라도, 모두 기댈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 거래.

세상에는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타인에게 기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잖아.

또 타인에게 기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고.

(마치 치밀한 공유결합으로 유연하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탄소섬유처럼 말이야..👩‍🔬)

분명 엄마의 따뜻한 에너지를 느끼고 엄마를 찾아오는 생명들이 참 많을거야.

나는 엄마 옆에서 같은 나무로 자라면 기대어 자랄 수는 있어도 엄마한테 안길 수는 없으니까,

작은 나무늘보로 태어나서 엄마한테 달라붙어 있을래.

가장 아끼는 건 나에게 줬던 것처럼, 가장 따뜻한 동굴과 가장 맛있는 이파리는 남겨뒀다 나한테 줘.

엄마의 사랑 야무지게 챙겨먹고, 엄마의 가장 자랑스럽고 예쁜 나무늘보가 될게 🦥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