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어릴 때부터 성당 주일학교 다닌 것 생각나지? 나이롱 신자였지만 너희들을 제대로 잘 키우고 싶어 열심히 보냈단다.

어느 날 네가 그림을 그려가지고 왔는데, 그 날 주제가 '예수님의 부활'이었나봐. 커다란 무덤을 그리고, 그 옆에 누운 사람, 그리고 그 옆에 벌떡 일어난 사람을 그렸어. "우리 엄마 돌아가시면, 내가 다시 엄마를 부활시킨다."라는 설명도 곁들어 있었지. 나 그 때 무척 감동을 먹었어. 예수님의 부활이 졸지에 엄마의 부활이 되어 버렸지.

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인데, 그 당시 어린이 신문을 구독하고 그 중 감동적인 글을 정해서 감상문을 적는 시간이 있었어. 너는 그 중 "양"에 대한 글이 감동적이었나봐. "양은 다른 동물에 비해 지능이 높아서 사물에 대한 지각이 뛰어나다."라는 내용에서 "지각"이라는 단어에 꽂혔나봐. "와~ 양도 지각을 하는구나. 나도 가끔 지각하는데"라고 써놨어.ㅎㅎ 그걸 읽고 배꼽이 빠져라 웃었는데, 너에게 이야기하면 삐쳐서 울까봐 말도 못하고 혼자 간직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 말했을 거야. 그때 넌 참 귀엽고 엉뚱했다고...

또 한번은 초4때 이웃집 아주머니와 그 자녀들과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사랑 싸움을 하던 주인공 남녀가 주사 바늘에 찔린 장면이 나왔는데, 우리끼리 주사 바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계속 시청하는데 갑자기 너가 "아... 아프겠다" 하는거야. 다들 빵! 터져서 웃고 난리났었어. 아무도 그 생각은 못하고 그 다음 결과만 궁금해하고 있었거든.

다들 보다 말고 웃느라 정신 없는데, 너는 왜 웃는지 모르고 그저 아픈 주인공을 안쓰러워하는 너를 보고 참 감정이 풍부하고 공감대가 넓다고 생각했다.

너는 누구에게나 편지를 잘 써주고, 그림 그려서 멘트 달아주는 것을 즐겨 했는데, 그 때문에 네가 예술 쪽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아, 두번째 에피소드는 할 말이 많아.

엄마가 워낙 책을 많이 읽혀서인지, 난 그때도 이미 지각이 그 지각인걸 알고 있었어. 다만, 내가 뭔가 창의적인 말을 하면 엄마가 너무 행복하게 웃어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엉뚱한 척 말했는데 그게 그렇게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어.

첫번째 에피소드는 난 전혀 기억 못하는 일인데, 그 당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나를 떠올리니 왠지 귀엽기도 하네. 원래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엄마 아빠가 원래 늘 곁에 있는 줄 알고 있다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접하는 순간부터 엄마의 죽음을 엄청 무서워 하잖아. 아기들이 엄마에게 쓰는 편지에는 늘 '죽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라는 말이 적혀있듯이 말이야.

내게도 엄마는 하늘같고 땅같고 우주같은 존재였어. 여느 아이들이 그랬듯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멋지고 제일 똑똑하다고 항상 말하고 다녔지. 점차 내 몸집이 커지는 만큼 엄마는 점점 작아지면서, 이 세상은 엄마만 바라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해. 나만의 강점, 나만의 생활,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려는 발버둥이 시작되고 엄마의 존재는 저 블랙홀 너머로 사라지게 되더라고. 한 때는 엄마가 내 우주였는데 말이야.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엄마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더라. 명상을 하면서 펑펑 울었던 적이 있어. 당시 감정이 메말라있던 나는 내 안의 사랑을 다시 깨워내기 위해 눈을 감고 사랑을 느꼈던 기억을 떠올려봤어. 최근 몇 년 간은 전혀 없었고, 기억을 더듬어 내려가보니 어느덧 아주 어릴 적 내가 엄마 품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았던 시절에 도착했지. 내가 온 몸 가득 사랑을 느꼈던 순간은, 엄마가 알 수 없는 음정의 자장가를 불러주며 무릎에 나를 눕히고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던 때였어. 그 부드러운 손길을 따라 따뜻한 사랑이 그대로 내 안에 차오르는 느낌이었거든.

어릴 적 내가 공감대가 넓었던 건 모두 엄마의 사랑 덕분이었을 거야. 엄마의 사랑을 받아, 그 기운으로 온 세상 아픈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엄마 덕분에 사랑을 알게 된 나니까, 그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공감하고, 이해하고,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고 싶어. 그니까 내가 가끔 엄마의 작은 무릎에 누우면, 무겁다고 밀어내다가 못 이긴듯 머리를 쓰다듬어줘. 엄마의 사랑으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