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자는 시간이 아깝긴 해도, 어릴 때는 밥보다 더 좋았어. 친구들이 여름 방학이 끝나면 살 빠져서 돌아오는데(방학 동안 밀린 잠을 자느라 밥 먹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겨울 방학을 보내고 나면 빠졌던 살을 도로 찌워서 온단다. 밤이 길어서 야식을 먹기 때문에...

학생 때는 잠이 좋았고, 그래서 1교시 수업은 기를 쓰고 피하려고 노력했었지. 너희들을 낳아 키우는 동안에도 늘 절실히 잠이 그리웠어. 라떼에는 배달 음식이라는 게 없어서 만들어 차려먹는 시간에 그냥 잠이나 잔다... 였고, 빠른 시간에 포만감을 주는 라면이나 빵을 애용했어. 내가 스낵면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조리 시간이 2분 39초라서...야

그래서 난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요리는 무조건 맛있고 감사히 먹게 된다. 이제 나이 들어 보니 시간 맞춰 세 끼니 먹고 규칙적으로 숙면하는 것도 복이다 싶더라. 식사가 불규칙해 저녁을 잊고 잠들면 도중에 배고파서 깨게 되고, 그러다보니 TV랑 친해지게 되고, 억지로 잠들 수가 없어 주전부리 찾게 되고... 결국 내 몸이 망가지게 되지. 소화기관도 나이 먹으면 딸리게 되거든.

잠과 밥. 서로 다른 세계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 젊어서야 커피 여러 잔 마셔도 잘 자고, 배부르게 잠들어도 소화를 잘 시키지만, 나이 들어감에 따라 배고프면 잠이 안오고 굶고 잠들면 숙면도 못하고 어영부영 자다가 새벽부터 밥을 찾게 된다. 그래서 뭐든지 적당히 충분하게 먹고 자야 숙면을 취하게 되는 것 같아.

너희들을 키우는 동안 요즘 말로 육퇴를 하고 만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좋아, 잠들기가 아까워서 졸음을 참아가며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거 하다보니 나중에 불면증이 생기고, 그간 귀찮다고 즉석 요리와 배달음식을 애용하다보니 이제는 잠과 밥 둘 다 소홀히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막 굴린 내 몸에게 미안해진다.

나도 무조건 밥보다는 잠이야. 왜냐하면 졸려서 밥을 거를 때는 있어도, 배고파서 잠을 거를 때는 없거든... (어쩌면 배고픔이 쉽사리 찾아오는 편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나도 엄마처럼 만만치 않은 소식좌지만, 그래도 한 번 먹을 때는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으려고 해. 그렇게 된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할머니와의 대화에서였어. 어느 날 할머니께 식사는 잘 잡수셨냐고 하니까, 잘 챙겨먹었다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내 나이 되면 맛있는 거 먹고 싶어도 소화가 안돼 못 먹으니까, 젊었을 때 좋은 거 많이 먹고, 좋은 거 많이 보고, 좋은 거 많이 들어라"고...

무엇이 되었든, 진정 나를 위한 것인지 늘 고심하고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아끼는 사람을 바라보듯 내 자신을 바라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먹었으면 하는 음식을 나에게 대접하는 거야. 나를 희생하고 남은 걸로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먼저 위하면서 채워진 에너지로 베푸는 게 가장 이상적인 베품인 것 같아.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다르고, 현실이 너무 벅차면 그마저의 여유도 찾기 힘들지만, 그래도 난 나를 위하는 것의 첫 번째는 음식이라고 생각해.

애니메이션 '소울'에 보면,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가장 먼저 찾는 순간이 바로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이잖아. 그만큼 음식이라는 건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인거야.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도 그러잖아, '못 먹는 음식 있으세요?' 아니면 '좋아하는 음식이 뭐에요?'라는 질문으로 첫 대화를 시작하지. 나에 대한 이해는 음식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아무튼 그러니까, 결론은 혼자 있다고 아무거나 먹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구. 엄마의 기준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으로 다시 차곡차곡 만들어갈 수 있도록 나도 맛난거 많이 많이 사다줄테니까, 이젠 맛동산 말고 다른거 심부름 좀 시켜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