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편지에서 술냄새가 나는 것 같은건 나의 기분 탓일까?ㅋㅋㅋ 왠지 지금까지의 20장의 편지 중 가장 들떠있는 것처럼 느껴져.

어쨌든 대학교 신입생때 소주로 먼저 술을 접했고, 잠이 잘 안와서 하루 한 잔씩 홀짝홀짝 마시다가 보드카를 접한 뒤론 다시 소주를 못먹겠다 이거지?

나도 엄마랑 비슷한듯 다른 것 같아.

어릴적 중국에서부터 고량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폭탄주를 마셔도 고량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다보니, 20살이 될 때까지 난 사실 소주가 맥주처럼 탄산이 들어있는줄 알았어. 보통 고량주는 40도 이상인데 소주는 그 당시 21도 언저리였으니까 말이야. 대학교에 가서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는데 너무 부드럽고 깔끔한거야. 그렇게 고량주를 끊고 소주에 빠져들었다가, 2015년이었나 순하리가 나왔는데 한강 근처 편의점 열 몇 군데를 돌아 겨우 한병 사서는 너무 맛있어서 그 자리에서 병째 마셨다니까. 그 이후로 소주는 너무 써서 못 마시겠고, 과일소주는 숙취가 심해서 못 마시겠더라고. 그렇게 최애 술을 찾기 위한 나의 방황은 시작됐지.

그렇게 방황한 끝에 주종별로 좋아하는 술을 찾아내고야 말았어. 약주는 풍정사계 춘, 청주는 서설, 탁주는 송명섭, 맥주는 무알콜 하이네켄(?), 와인은 샤블리나 떼땅져 샴페인, 위스키는 아벨라워… 소주는 요새 새로가 진짜 맛있더라고. 좋아하는 안주는 곁들이는 술에 따라 다른데, 아벨라워를 제외하고는 전부 해산물이나 생선회랑 먹기 좋아. 아무래도 내가 회를 좋아해서 비슷한 술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 제주도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회는 정말 원없이 먹었는데, 둘째 날 저녁에는 자연산 돌돔에 제주도에서만 파는 순한 한라산을 같이 마셨거든. 새로와 비슷한 제로슈거 소준데 정말 깔끔하고 끝맛이 약간 독특한게 너무 맛있는거야. 어쩌면 같이 출장을 간 사람들도 외국계 회사원이라 그런지 마음이 열려있고 편안해서 더 맛있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해.

아무래도 나도 엄마처럼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으로써 술을 좋아하는 건가봐. 술을 살 때는 옷이나 화장품을 살 때와는 달리 누구랑 마실지, 어디서 마실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시는 거라면 술을 고르는 순간부터 다 마신 뒤 맛에 대한 토론을 하는 순간까지 모두 즐거운 추억이 되잖아.

이효리도 방송에 나와서 그런 말을 했지. “술 신봉자는 아니지만, 지난 20년을 생각하면 술이다. 그간 모든 힘들 때, 즐거울 때, 고마울 때, 미안할 때 술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술이 맛있는 이유는 술 자체의 맛도 있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술을 핑계로 나누는 마음 덕분인 거야. 나를 생각하며 고른 술을 함께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면 언제 떠올려도 기분 좋은 추억이 되기 마련이야. 물론 나와의 관계가 아니라 취기에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그런 교감을 하기 어렵지만 말이야.

한때는 요가와 명상에 집중하면서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었어. 그 때는 술은 자기통제력이 낮은 사람만 찾는 거라고 생각했어. 괴로운 것이 있다면 그 것을 직면하고 해결해야지, 술이나 담배에 의존해서 잊으려 하는 게 너무 나약하다고 느꼈거든. 그런데 어쩌면 내가 그 당시에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해. 오히려 지금은 취하지 않을 정도로 홀짝이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게 참 좋아. 취기에 나를 빼앗기지 않는 선을 유지할 수 있는 통제력을 지금은 갖췄다고 해야 할까?

엄마도 언제든 술 한잔, 추억 한잔 필요하면 말해. 내가 새롭고 맛있는 술 사서 같이 즐겨줄게!

p.s. 엄마 주려고 순한 한라산 한 병 사가니까 조만간 회랑 같이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