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바다보다 산이 좋다.

땀 흘리며 올라간 정상에서 내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참 좋아. 그리고 등반하면서 내 옆에 있어주는 자연의 느낌이 좋아. 훗날 결혼해서 가족이 생기면 다 같이 백담사에서 몇날 며칠을 캠핑하고 싶었어. 이루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설악산 대청봉을 등반하기 위해 백담사를 지나칠때면 그 주변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참 맘에 들었었어. 중청봉 대피소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 일찍 대청봉 오르고 그날 안으로 설악동으로 넘어와야 해서 백담사는 그냥 지나쳐야 하는 동네였지만, 언젠가는 꼭 함께 하리라고 다짐(만) 했었지.

여름방학 때마다 전국의 이름난 산을 친구들과 함께 다녔는데, 수다와 함께 사진을 많이 찍어서인지 항상 그 산과 더불어 있는 느낌이었어.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계곡에 자주 다녔지.

어느 여름날 무주구천동에 가족여행을 떠났는데, 계곡의 물소리가 얼마나 요란했던지 대화는 커녕 밥 만들어 먹기만 했어. 물도 차가워서 발 담그지도 못하고. 바위 위에서 낮잠을 잤다가는 입이 돌아가기 딱 좋겠더라고.

다들 낚시하러 간 날 나는 아침 일찍 홀로 물병만 소지하고 씩씩하게 등산을 시작했어. 혼자 하는 등반이 단조롭고 지루하긴 했지만, 내려오시는 몇몇 분이 내가 기특해 보였는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라고... 하시더라. 50대로 보이는 그 분에게 20대 초반인 내가 안쓰러웠나봐... 덕분에 금방 정상에 올랐어. 가슴이 시원하고, 바람도 싱그럽고. 게다가 산 위에서 보이는 광경은 얼마나 웅장했던지. 광활했고.

사진기도 없이 달랑 물병만 소지하고 간거라 정상의 모습은 내 눈과 가슴에만 간직하고 내려왔어. 그 산 이름은 "덕유산"이야.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난 등산이라서 그런가 유난히 추억에 남네. 그 이후 혼자 가는 등산을 꿈꾸었는데 이루지 못했어.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남들은 어차피 내려올거 왜 힘들게 올라가냐고 핀잔을 주지만, 난 내려갈 때마다 아쉽다. 언제 또 다시 올까 싶어서...

설악산 대청봉에 오를 때마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터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내려오곤 했는데, 5월 어느날 아직도 눈이 쌓인 등산길을 오르다 정상에서 금강산을 영접했지 뭐야!!! 그 후 난 설악산에서 하산했다. (선택 받았다는 뜻이야)

내 기준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두 유형으로 나뉘는 것 같아. 등산하는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과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 물론 둘 다 좋지만 사람마다 그 비중이 조금씩 다르다고나 할까?

엄마는 왠지 전자인 것 같고, 난 사실 후자야. ㅋㅋㅋ 애쓰지 않고 올라가서 멋진 풍경을 느끼는게 젤루 좋아. 꽃 구경 단풍 구경한답시고 등산을 해도, 결국 넘어지지는 않을까 바닥만 내려다보며 올라가게 되더라고. 나만 그래?

그런 내게 최고의 산은 단연코 중국의 장가계였어. 아바타의 배경이라고도 하지. 몇년 전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장가계로 가는 직항노선이 생겼는데, 그 몇달 뒤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어.

장가계는 등산로가 거의 없어. 케이블카를 타고 맘편히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엄청난 경치를 마주하게 돼.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입시가 끝나고 다함께 간 졸업여행에서 장가계를 갔었는데, 마치 금도끼 은도끼에 나오는 신선할아버지가 살 것만 같은 풍경이었어. (장가계 이미지 모아보기) 우리가 산 정상에서 멋진 풍경을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기운을 얻게 되는 건, 우리가 자연과 연결되어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 자연과의 연결성이 강할수록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거지.

사주팔자에 보면 태어난 시간에 따라서 그 사람이 가진 주요한 기운이 있잖아. 엄마는 나무고 내가 물인 것처럼. 그건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런 거래. 지구 상의 원소들이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특정 시간에는 특정 요소가 더 강한 에너지를 가지는데, 그 때 태어나면 그 요소의 성질을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난다는 거야.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순환하는 에너지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어.

요새는 자연친화적인 것들에 정말 많은 관심을 기울이잖아. 동물복지, 친환경, 비건 등등 말이야.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내가 가진 에너지를 선한 에너지로 바꾸는 것.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세상을 위해 가장 이로운 행동인 것 같아. 우리가 하는 말에도, 손짓에도, 시선에도 모두 감정과 에너지가 담겨 있으니까 말이야.

자신을 정화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거야. 나처럼 요가를 하거나 서핑을 하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엄마처럼 산을 타는 사람도 있을 거고, 혹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며 연결성을 강화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늘 애쓰고 있다는 게 아닐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따뜻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다 함께 숲속에 들어와있는 것처럼 포근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