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변화를 말하는줄 알았는데 생각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었구나.

소싯적의 생각을 나이들어서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 "꼰대"라고 한다며? 요즘은 그런 사람을 능가하는 젊은 꼰대도 많다고 만만치 않다더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꼰대라고 치자. 그런 점에서 난 덜 꼰대라고 생각해. 왜냐면 MZ 세대를 이해하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거든.

나의 과거를 현세대에게 주입시키기 보다는 현재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어. 예를 들면 "아모르파티" 를 인정하고, "라떼시리즈"를 강요하지 않아. 라떼를 아무리 논해도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힘들어. 그러나 현재는 함께 가고 있으니 나도 열심히 쫒아가야 하지 않겠니? 거기서 쳐지면 꼰대가 되는것이고 라떼선생으로 전락하는거 아닌가 한다.

성격은 어찌 노력해서 변한 척 할 수는 있겠지만 급하면 제 성격이 나오므로 변하기는 힘들거야. 오죽하면 "사람이 변하면 죽을때"라는 말이 있겠니. 그러니 이해하기 보다는 그냥 받아들이면 돼. MBTI 가 괜히 있는게 아니다.

그래도 변한것을 꼽으라면 운전습관이 너그러워진 것. 손해 보는것 같아 깜박이를 켜고 들어와도 절대 양보 안하고, 옆 차선에서 속도를 내어 달리면 덩달아 마구 달리는 통에 정신차려보고 깜짝 놀란적도 있어 (120Km/h). 지금은 제한속도 지켜가며 달리고 양보도 엄청 잘한다. 그러다보니 내차 뒤에는 아무차도 안따라와. 죄다 답답하다고 앞질러 간것이지 ㅎㅎ (벌금 각!)

그런데 부작용도 생겼어. 교통수칙 위반하는 차량을 보면 막 신고하고 싶어져서 카파라치 활동 하라는 권고도 받았어. 우수자를 뽑아 연말에 상품권 준대. 너희들을 낳고 나서 너희들을 위해 운전도 순하게 하게 된 것이 변화라면 변화일까 싶어. 그런 반면에 올라운드가 예전만큼 잘안되서 눈이 엄청 바빠 ㅋ

내가 나이 먹어가면서 어떤 점이 변했다기 보다는 치고 나가는 현재를 배우고 습득하기 바빠서 나의 어떤점이 변했는지 잘 모르겠어. 정신없이 빠르게 도망가는 트렌드를 따라가느라 나의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참 좋아. (나의 과거 뒤편이 너무 한심해서...)

지나가버린 과거에서 건질 것만 배우고 현재를 발판삼아 미래로 가야하니 내 생각도 행동도 같이 변해가야 하는것이 맞는거 같아. 근데 쓰면서 생각해보니...나이 먹어도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변해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아니라 겁나서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아닌가 싶네.

네가 보기에는 내가 변한것이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엄마는 변한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여전히 새로운 걸 마주하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여전히 장난기가 많고, 여전히 무계획적이고(?)...

엄마가 저번에 할머니 성격이 변한 것 같다고 했었잖아. 나랑 오빠 유치원 차에 태워보내실 때도 매번 나와서 선생님께 인사하시던 할머니께서 최근엔 도우미분께 자잘한 일까지 시킨다는 말을 엄마한테 들었을 때, 사실 다른 분이 그러셨다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을텐데 내가 아는 가장 마음 깊으신 할머니께서 그러셨다니 조금 놀라기도 했어. 그와 동시에 할머니도 연세가 많이 드셨구나, 새삼 느껴지기도 했고.

엄마는 나이 먹어도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뇌세포는 사용하지 않으면 점차 기능이 퇴화되는데, 사람마다 가장 먼저 퇴화되는 부위가 다르대. 누군가는 보거나 듣는 감각적인 부분이 약화되고, 누군가는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약화되고, 또 누군가는 성격이 급해지거나 배려심이 적어진다고 하더라고. (엄마는 오히려 운전이 순해졌다니 다행이야 ㅎㅎ)

난 나이가 들수록 원래 더 지혜로워지고, 더 온화해지고, 더 포용하게 되는 줄 알았어서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어. 내가 나의 발전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은 "지혜로움"이었거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뇌세포의 사멸에 맞서 더 넓은 시야, 더 넓은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꾸준히 움직이고, 호흡하고 알아차려야 해. 나이가 들수록 더 치열하게 말이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말로는 쉽지만 실행하기엔 참 어려운 것 같아. 그래서 엄마가 변한게 뭔지 모르겠다는 말이 왠지 안심되기도 해. 적어도 건강한 뇌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잖아?

그래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엄마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엄마의 과거를 돌아봐도 한심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때도 엄마는 지금처럼 최선을 다했잖아. 그 과거가 하나하나 모여 지금을 만든 거니까, 앞을 보고 달려가더라도 과거를 외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인요가 가이드'라는 책에 나오는 100년 정도 되었다는 기도문이 있는데, 선택에 기로에 놓일 때마다 나는 이 구절을 되뇌곤 해.

아마 나도 나이가 들면서 엄마처럼 뭔가를 깜빡깜빡 하거나, 할머니처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적어지겠지.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발전시키되,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범위를 벗어나면 그저 순응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노화야. 과연 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저도 인생의 굵직한 변곡점에서 크고작은 좌절을 겪었어요. 내가 꿈꿨던 길이 아닌 다른 길에서, 생각치 못했던 선택들을 해 나가며 지금의 인생이 채워진 것 같습니다. 성격 상 후회는 잘 안하는 편이지만, 솔직히 남몰래 미련은 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뭐.. 그럴수도 있지않나요!? 미련도 아쉬움도 내 마음인데, 그 마음 안고 앞으로의 시간들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인생의 주인은 난데, 남탓하지 않고 ! 내눈치 보지않고 ! 살고싶어요. 그런데 새삼 어머님의 극현실적인 대답 오늘따라 더 멋있네요 ㅎㅎㅎㅎ 👍

첫 번째 편지부터 스물 한 번째 편지까지 꾸준히 구독하고 있는 구독자입니다. 딸의 질문에 엄마가 답하고, 또 그에 대한 답신을 뉴스 레터로 받아보는 형식은 정말 신선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귀찮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편지 내용은 정말 정성스럽게 한 땀 한 땀 써주시는 걸 보니 평소에 이런 대화를 많이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합니다. 오늘 편지의 내용에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중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과거를 발판삼아 현실에 충실하다보면 나의 미래는 당연히 좋아질 거라는 신념이 있기에, 미안하지만 이미 벌어진 내 인생을 뒤집을 생각은 없다"라는 말씀이 되게 와닿았습니다. 결국 현실을 살고 있는 건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현재의 "나"이지, 미래의 "나"가 아니구나. 다가올 미래를 꿈꾸는데 열중하기 보다, 살아온 과거를 발판삼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 충실히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내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뉴스레터를 보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